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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그 사람의 죽음은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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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죽음은 무엇이었나?

관심을 두게 된 시작은 단순했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언론과 경찰과 화물연대 심지어 유가족조차 입을 다물었다. 결국, 뒤늦게 직접 취재를 시작했다. 취재 기간은 2014125일부터 225일까지다.

 

  ‘이상한’ 사건이 발생했다. 2014103일 오후 240. 경남 거제시 하청면 칠천도 연육교를 지나던 25톤 트럭이 30m 바다로 추락했다. 신고를 받고 112119가 출동했지만 이날 오후 430분 운전기사 정수일 씨(가명·당시 57)는 숨진 채 발견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 사망사고로 보인다. 하지만 정씨의 죽음을 놓고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뉘면서 문제는 시작됐다. 가족과 동료들은 화물연대의 외압 때문에 자살한 것이라 말했다. 반대로 화물연대는 운송회사(거제 대우조선)에서 불합리한 배차와 낮은 운송료에 불만을 품고 결국 자살로 이어졌기에 ‘열사’로 칭했다.

 당시 화물연대 경남지부는 사고 전달인 929일부터 대우조선과 운송료를 두고 파업에 들어갔다. 대우조선은 과거 20135월과 20148월 두 차례에 걸쳐 운송료를 7.5퍼센트 올렸고, 곧 농성이 시작됐다.

 한동안 지역 여론은 너도나도 정씨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썼다. 하지만 그 현상이 오래가진 못했다. 사고가 나고 이틀 뒤, 화물연대 경남지부 회장과 거제지회 회장이 동양조선 철탑을 올라가 시위를 벌였고, 3일 뒤인 108일 노사협상 끝에 합의를 이루게 되면서부터다. 협상과 함께 그의 죽음에 관한 ‘기사’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여기까지가 기존 보도를 통해 드러난 사실의 순서다.

 의구심이 들었다. 사건에 대한 ‘사실’은 드러나지만, 그 너머의 ‘진실’은 알 수 없었다. 고심 끝에 125일부터 225일까지 거제를 다섯 차례 방문하며 취재를 시작했다.

 

 취재 시작과 불편한 진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이런 사건을 취재하는 것은 처음이라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우선 정씨의 사망사건과 관련해 지역 언론 중 가장 심층적으로 보도한 <한남일보>를 찾았다.

 103일 사망 직전부터 유가족과 동료 지인들을 자세히 취재한 J기자를 만났다. 그의 취재 내용 덕분에 어느 정도 대한 윤곽이 잡힐 수 있었다. J기자는 “무언가 수상한 사건이다”라는 말로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정씨의 아내와 동료들은 화물연대 파업과 같은 목적으로 목숨을 던질 사람이 아니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고 한다.

 정씨 아내는 “사망사고 1시간 전까지도 일상적인 통화를 나눴다. 자살을 암시하는 어떠한 말도 없었다. 단지 일하는 것이 고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11살 된)딸은 잘 있느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동료 한 사람은 사고가 났던 날 오전에 정씨로부터 전화가 와서 “(화물연대)노조 탈퇴서 양식을 출력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 외 정씨의 동료 연락처와 다니던 직장 주소를 파악한 뒤 사무실을 나왔다. 그런데 뒤에서 J기자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몇 가지 말을 더 했다. “가장 의문이 되는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왜 정씨가 연육교 방향으로 향했을까”라고 말했다. 사고가 났던 지점이 연육교를 지나 칠천도로 가는 위치였는데, 칠천도 자체가 청정지역이라 조선업체는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최초 신고자의 존재다.J기자의 말에 따르면 현장에서 유가족이 경찰이 주고받는 대화를 바로 옆에서 들었는데 최초 신고자가 사고차량 뒤를 따라오던 ‘차량 주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물었다. “아니, 그럼 누가 먼저 신고했다는 거죠?” “사고 차량 뒤에 있던 차량 주인이 사고현장을 목격하고 112에 신고하는 대신, 자신이 아는 도의원에게 전화했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신고를 한 사람은 1차 목격자가 아닌 도의원이 신고했다는 요지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우선 J기자가 말한 첫 번째, 칠천도 방향으로 왜 갔는지를 알기 위해 연육교를 건너 칠천도로 향했다. 칠천도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아주머니는 “여기에 조선소 관련 업체는 없다”고 말했다. 둘러봐도 딱히 회사로 보이는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여기서 황당한 것은 J기자 쓴 기사에는 본인이 말한 대로 ‘왜 칠천도 방향으로 갔을까’에 대해 질문을 던졌는데, 거제지역 다른 언론사는 제각기 말이 틀렸다. 칠천도에 조선업체가 있다고 주장하는 신문이 있고, <한남일보> 기사를 그대로 받아쓴 듯한 기사도 눈에 띄었다(참고로 거제도 내에서 신문으로 발행되는 언론사는 4, 인터넷 신문사가 10개로 합치면 14개나 된다). 두 번째 최초신고자와 관련해서는 경찰 조사관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따가운 시선이 두려웠다”

 우선 화물연대 측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수화기 넘어 화물연대 간부가 말했다. “그 사건과 관련해서는 충분히 보도되었고, 공식 입장은 화물연대 홈페이지에 있으니 확인하라.

 그의 말에 따랐다. 화물연대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취재요청 보도자료’라는 문서가 있었다. 내용은 이렇다. 사망자 운전자는 화물연대의 입장처럼 운송료 삭감에 대한 스트레스로 몸을 던졌다. 또한, 정씨가 사망 직전 화물노조 지인에게 문자를 보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하는데 내가 어리석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메시지를 받은 지인을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며칠 뒤, 정씨가 다니던 직장을 찾았다. 회사 대표를 만났다. 질문하려는 찰라 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정씨 장례식비용 일체를 지급했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답하다니. 또 “정씨 가족 중 취업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곧바로 회사에서 자리를 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것도 묻지 않았다.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회사에서 평소 정씨가 화물연대와의 갈등으로 곤란한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사장은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평소에 (화물연대 눈치 때문에) 주로 밤에 배차해달라고 요구했다. 따가운 시선이 두려웠을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특히 파업하는 지역으로 배차를 안 해줬으면 좋겠다고 자주 얘기했다”고 답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사무실 밖을 나왔다. 회사 입구 향하는데, 나이 지긋한 경비원이 보였다. 순간 ‘혹시?’하는 생각이 스쳤다. 슬쩍 다가가 정씨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 “안다”고 말했다. 간단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경비원의 답변은 간단하지 않았다. (사망하기) 며칠 전 늦은 밤 공장에서 정씨가 차량에 물건을 싣고 있는데, 갑자기 화물연대 쪽 사람 몇몇이 들이닥쳤다. 멀리서 보기엔 협박하는 듯이 보였다”고 주장했다.

 무언가 내가 취재하는 방향은 다 화물연대를 싫어하는 쪽뿐일까. 이렇게 대면 한쪽 주장만을 내비치는 기사가 되는 것인데. 물론 앞서 소개한 것들은 사실이라고 믿지만 그렇다고 한쪽의 입장을 더 듣지 않고 정리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정씨의 지인 중 화물연대에 소속 분과 통화를 나누게 됐다. 그는 정씨와 함께 오랜 기간 화물연대에 몸담았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정씨는)마음이 여렸다. 화물연대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파업에 동참하기에는 11살 된 딸이 눈에 밟힌다고 자주 말했고, 함께 즐겁게 일하던 사람들이 누구는 파업하고, 누구는 파업 안 하고 눈치 보며 일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자주 하소연했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그동안 취재했던 내용을 점검했다. 남은 것은 사건을 조사한 담당과 직접 통화하는 것이었다. 헌데 경찰과의 통화로 내가 얻고자 하는 정보를 얼마나 유추할 수 있을까. 현재까지의 취재내용을 정리하고 조언을 구하기 위해 경남지방변호사회 안한진 변호사를 찾았다.

 안 변호사에게 취재한 내용을 말했다. 안경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경찰서 담당자에게 전화하기 전에 이것만큼은 꼭 물어보라며 집어줬다. 먼저 의문이 드는 점이 많으므로, 경찰 조사결과가 나왔다면, 자살이든 아니든, 판정된 근거가 무엇인지 캐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CCTV와 통화내용은 기본으로 확인할 것을 지시했다). 그밖에 최초신고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신고자가 정씨와 알고 있는 사이인지도 꼭 확인하라고 말했다.

 다음 날 거제경찰서로 전화했다. 정씨 사고의 담당 조사관이었던 A조사관으로 연결됐다. 인사를 건네고 안 변호사가 집어준 대로 질문을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답변태도가 불량했다. “이미 몇 개월 전에 자살사고로 조사결과 나왔고요. 더 밝혀질 건 없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살사고로 판정된 기준이 뭐죠? CCTV나 통화내용은 확인해 보셨나요?”라고 묻자 “연육교에서 사고 났는데요. 거기에는 CCTV 없고요. 통화내용에는 이상 없다”고 답했다.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최초신고자는 누군지 파악됐나요?” “아니요.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짜증이 났다. “아니 최초신고자가 누군지 말이 됩니까? 사망자 가족 측 얘기를 들어보니 최초신고자가 따라오던 차량이 아니라 도의원이었다는 말이 있던데요?A조사관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죄송하지만, 제가 처음부터 조사했던 담당인데요. 전혀 그런 사실 없어요.”라고 말했다.

 얼마 뒤 정씨의 아내가 “아픈 이야기를 또 꺼내게 돼서 가슴은 아프지만, 남편이 억울하지 않게 하늘나라로 떠나길 바란다.”고 내게 말했다. 이번 사건을 취재한 의도는 하나뿐이다. 그의 죽음에 대한 ‘관심’이었다. 무언가 속 시원하게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알고 싶었다. 어느 정도 진실과 가까워졌을까. 무어라 쉽게 결론내리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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