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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바쁘다'라는 말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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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라는 말의 의미. 일반적으로 바쁘다는 말은 ‘일이 많거나 급해서 분주하고 겨를이 없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내 귀에는 ‘바쁘다’라는 말이 다르게 들린다. ‘여유가 없다’ 혹은 ‘너와 대화를 시간이 없다’ 정도로 말이다.

 

스무 살이 막 됐을 무렵, 나는 바쁜 삶을 동경했다. 무기력하게 있는 것보다 분주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은 내 눈에 멋져 보였다. 그래서 일기장에 ‘20대, 그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가는 인생을’이라고 적었다. 누가 그랬던가. 생각하고 소망하는 대로 인생은 흘러간다고. 낡은 일기장에 써놓은 대로 나는 나름대로 무심하게 바빴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사랑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술을 마시고 봉사활동을 하고 여행을 떠났다. 심지어 댄스 동아리에 몸을 맡기기도 했다. 물론 그곳에서 내 몸이 참 뻣뻣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군 제대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였다. 타인이 가끔 “잘 지내시죠?” 라고 물어보면 기다렸다는 듯 “네, 바쁘게 살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그렇게 대답하고 내심 뿌듯했다. 나 스스로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말이다.

 

 

 

그렇게 바쁜 것을 미덕으로 삼던 삶에서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 하나 있었다. 평소 아끼던 동생이 있었는데 새벽에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잠결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형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늘 바쁘게 사는 모습을 보니까 말을 못 걸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취해서 전화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한참을 통화하고 나는 뜬눈으로 아침 해를 마주했다.

 

그 날 이후 쉽게 타인에게 바쁘다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생활은 여전히 분주했지만, 그것을 증명하려 하거나 표출하려 애쓰지 않았다. 나 말고도 바쁜 사람은 충분히 많고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더 집중하려 애썼다. 그러한 노력은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바랬다. 아무 걱정 없이 살 것만 같았던 주변의 선배나 친구, 후배들은 각자만의 고민으로 가득했다. 때때로 남자 둘이서 눈물을 머금으며 끌어안기도 하고, 새벽까지 걷고 또 걸으며 인생과 사랑을 논하기도 했다. 덕분에 잠자는 시간은 훨씬 줄어들었지만 나름대로 뿌듯하고 무언가 알 수 없는 벅찬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가끔 내가 주변 사람에게 묻는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라고. 돌아오는 답은 “정신없이 바빠요.” 그런 답이 돌아올 때면 과거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가슴이 아프다. 물론 바쁘다고 말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내게 바쁘다고 말하는 대부분은 누가 봐도 자기 인생에 충실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보면서 배우는 것도 많다. 다만, 그들에게 내 속마음을 말하기엔 쉽지 않다.

 

문득 쓰면서도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쓰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단순하게 ‘바쁘다’는 의미에 대해 내가 느낀 부분을 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써놓고 보니까 좀, 그렇다. 그냥 그런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나는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넓은 품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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