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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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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태신해안로 125 2층에 위치한 푸근한 곰아저씨 책방. 불쑥 찾아온 내게 그는 아낌없이 자신과 책방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2023.01.09)

 

고백해야겠다. 브런치에 쓰는 글 대부분은 초고다. 며칠을 앓아가며 쓰는 일은 없다. 글쓰기 버튼을 클릭한 순간부터 한 호흡으로 쭉 써 내려간다. 몇 번 훑어보고 맞춤법 검사기를 돌린다. 큰 이상이 없으면 발행버튼을 누르는데, 그제야 미처 확인하지 못한 오탈자가 눈에 띈다. 다른 분들이 보기 전에 서둘러 수정까지 마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 밖에도 작가의 서랍에 쌓아둔 글이 가득하다. 단어나 몇 문장만 끄적인 것도 있고, 달랑 사진 한 장만 저장해 둔 것도 있다. 

 

아이폰 메모장과 음성메모에는 내가 아니면 알 수 없는 흔적들이 넘친다. 언제부턴가 좋은 풍경을 만나면 동영상 대신 음성 녹음을 해두는 버릇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그 소리를 들으면 그때, 그 순간으로 빠져든다. 어떤 감정이었고 무엇을 느꼈는지 기억난다. 가끔 쓸 거리가 번뜩 생각나지 않아서 방황할 때면 글감 창고를 연다. 그럼 거짓말처럼 한 페이지 가득 무언가를 적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요즘에는 반대로 쓸 것들이 참 많다.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두 시간 남짓 신문을 배달하는 지혜 씨(가명) 이야기도 쓰다 멈췄다. 숨을 헐떡이며 뛰다가 걷길 반복하는 지혜 씨의 뒷모습과 "지금 받는 봉급으로는 도저히 생활을 이어갈 수 없거든요. 부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예요."라고 말하며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신문 배달 후에는 다시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직장으로 향한다. 쓰리잡을 병행하며 어렵게 합격한 9급 공무원 생활이지만, 녹록지 않다. 지병으로 집에 계신 어머니와 고3 남동생까지, 그녀의 몫이니까. 함께 신문을 들고뛰던 내 발걸음이 느려졌다. 마음이 저렸다. 올해로 스물다섯이 되는 지혜 씨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단념 따윈 없었다. 오로지 계속 뛸 뿐이었다. 

 

늘어나는 약봉투를 뒤로하고 제주행을 결정한 푸근한 곰아저씨는 섬생활을 시작한 지 7년이 넘었다. 지금도 가끔 호흡이 가빠질 때도 있지만 책방 너머 비치는 바다와 노을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처음에는 작은 1층 카페로 시작했다. 요리를 좋아하던 그는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커피와 디저트로 손님들의 마음을 얻었고, 입소문이 탔다. 광고는 단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서귀포에서도 한참 들어가는 촌인데 매번 찾아오는 이들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고 자주 말했다. 책방은 옆건물 2층에서 작년부터 시작하셨는데 주변 분들이 돈 안 되는 장사를 왜 하느냐고 핀잔하기 일쑤였지만,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다. 이렇게 근사한 풍경과 주인장이 있는 곳에서 내 책이 호흡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뭔가 뜨거워졌다. 감사 인사를 전하고자 방문했지만, 되려 위로를 받았다. 앞으로의 꿈과 미래를 조심스레 전했더니 확신 어린 눈빛으로 응원해 주셨다. 반드시 잘 될 거라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낯선 이의 격려였다. 

 

아직 미처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들었던 타인은 물론,  조차도. 

 

가끔 내게도 누군가가 인터뷰를 진행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내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으니까. 묻고 듣는데 익숙해져서 객관적으로 내 삶에 대한 질문을 깊이 물었던 일은 적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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