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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 읽는 시간

수잔 케인의 <콰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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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는 수줍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극히 꺼려했다. 대신 홀로 사색하는 시간을 보내며 안도감을 느꼈다. 소녀에게 취미이자 휴식은 따뜻한 난로 앞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책을 읽는 시간이었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읽는 그 순간이 그녀에겐 더 없이 소중하고 애틋했다.

  시간이 흘러 조용한 책벌레 소녀는 프린스턴과 하버드 법대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후 기업과 대학에서 협상기법을 가르치는 변호사가 되었다. 하지만 내성적인 자신의 성격이 직업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자주 생각했다. 그녀는 궁금했다. ‘왜 세상은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하고, 왜 내향적인 사람은 자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원래의 성격을 감추려 하는 걸까.’

 그녀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분주하게 움직였다. 수년간의 연구와 수많은 사람과의 인터뷰 끝에 그녀는 자신과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내향성이 얼마나 위대한 기질인지 스스로 증명해보기로 했다. 성공이 보장되는 월스트리트의 변호사 세계를 떠나 작가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리고 7년간의 노고 끝에 한 권의 책이 출간됐다. 제목은 <콰이어트>. 그녀의 이름은 수잔 케인이다.

 

 

 공들여 세상에 내놓은 책이라 그런지 완독 하는 데에도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다. 가독성이 상당히 뛰어난 책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더딘 것은, 읽는 것만큼이나 곰곰이 생각할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먼저 <콰이어트>가 초점을 두는 사람은 자신에게서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가진 이들이다. 사색적인, 지적인, 책벌레, 꾸밈없는, 섬세한, 사려 깊은, 진지한, 숙고하는, 미세한, 내성적인, 내면을 향하는, 부드러운, 차분한, 수수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수줍음 많은, 위험을 싫어하는, 얼굴이 두껍지 않은.

 이 책은 그와 반대되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활동적인, 원기 왕성한, 말이 많은, 사교적인, 사람을 좋아하는, 흥분을 잘하는, 지배적인, 자기주장이 강한, 적극적인, 위험을 무릅쓰는, 얼굴이 두꺼운, 외부를 향하는, 느긋한, 대담한, 스포트라이트 앞에서도 편안한.

 물론 이것은 넓게 분류한 것이다. 한쪽으로만 완전히 쏠리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이런 유형을 즉각적으로 알아본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연구발표에 따르면, 미국을 기준으로 3분 1 혹은 2분 1 가량의 미국인이 내향적이라고 한다. 풀어 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두세 명 중 한 명은 내향적이다(미국이 가장 외향적인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나라에는 더 많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수잔 케인은 “이런 통계가 놀랍다면, 그것은 아마도 외향적인 척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리라.”라고 썼다. 또한 “수많은 내향적인 사람들이 자신마저 속이는 것도 납득이 간다. 내가 ‘외향성 이상’이라고 이름 붙인 신념 체계에 따라 우리는 살고 있다. 이상적인 자아란, 사교적이고 지배적이며 스포트라이트에 익숙한 외향적인 존재일 거라고 생각하는 만연한 믿음이다.”라고 덧붙였다.

 수잔 케인은 이러한 외향성 이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일은 중대한 실수라 주장하며 이 책에서 소개되는 엘리너 루즈벨트, 앨 고어, 워런 버핏, 간디, 로자 파크스와 같은 인물들을 통해 내향성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내향성 ‘덕분에’ 특정한 일을 달성했던 점을 소개했다. 또한 침묵과 고독을 즐기는 사람들의 어떤 특성이 그토록 탁월한 성과를 내도록 하는지를 심리학, 인류학, 뇌과학, 유전학의 최신 연구와 실험을 통해 설명했다.

 참고로 <콰이어트>는 외향성을 단순히 배척하고 내향성만을 살리자는 의도로 집필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쪽으로 치우쳐진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여 서로가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구성하자는 것이 본뜻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 문뜩 후배 J가 생각났다. 참, 내성적인 후배였다. 벚꽃이 흩날리던 따뜻한 봄날의 캠퍼스에서 모든 이가 청춘을 흥얼거리고 있을 때에도, J는 텅 빈 강의실에 앉아서 묵묵하게 책을 읽곤 했다.

 말수도 적었다. 침묵을 미덕으로 삼는 듯했다. 한 학기를 다녀도 그와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나눠본 적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절반을 넘었다. 가끔 예상치 않는 교수님의 질문 덕에 대답을 겨우 해도 목소리가 작아서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걱정과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불안전한 삶을 살고 있는 학교의 ‘문제아’라 수군댔다. J는 더 깊은 고독 속으로 빠져들었다. 학교와 세상이 원하는 이상적인 성격을 갖추진 못한 J는 자신을 자책하고 원망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당시 J에게 불법을 알려주고 몇 번 격려를 해주었지만, 조금 더 진실 되게 응원해주지 못한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고백하건대, 나도 그런 J의 성격이 조금은 ‘밝아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년 만에 전화를 걸었다. 군대를 다녀온 지 반년도 안 된 녀석의 목소리는 여전히 조용하고 자신감이 없었다. 수화기 넘어 “전 여전히 생각이 많아요, 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을 여전히 ‘문제아’로 보는 세상을 향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케다 선생님의 ‘앵매도리’와 관련된 스피치와 <콰이어트>책을 추천하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더 이상 그를 ‘문제아’라고 치부하지 않는다. 성격이 바뀌길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 많은 J에게 더 멋진 단어가 필요할 뿐이다. 사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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