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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 읽는 시간

생택쥐페리 <야간 비행>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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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7월 20일 월요일. 광주 영풍문고. 나는 그곳에서 방황했다. 책을 만지작거리다 제자리에 놓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성실한 남자 직원이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뭐 찾으시는 책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아뇨, 제가 찾을게요.”라고 말했다.

 

 방황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서점은 왔는데 읽을 만한 책이 없다. 평소 베스트셀러부터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하게 읽는 내 독서 취향을 고려해 봐도 그날은 심각할 정도로 마음에 차는 책이 없었다. 그냥 갈까하다가 문득 하나의 질문이 머리를 스쳤다. ‘처음 책 한 권을 온전하게 읽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나의 삶에 있어 책의 원점은?’ 물음과 함께 기억을 더듬었다. 곧 미세한 추억 속에서 한 사람의 작가가 떠올랐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짧은 한 문장으로 어린 내 마음을 울렸던 그 남자, 생택쥐페리. 그리고 <어린 왕자>.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어머니께 받았던 책.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대신 받아서 서운했던 기억. 포장지를 뜯고 처음 본 늘씬하고 가냘픈, 노란머리 어린왕자. 밤을 새워 가며 읽었던 추억. 마지막 장을 덮고 소개된 작가의 짧은 프로필 끄트머리에 ‘공군 조종사로 비행을 하다 실종. 지금쯤 어딘가 작은 별에서 어린 왕자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을까’ 라는 부분은 내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래. 그의 책을 읽어보자.’ 나는 추억을 곱씹으며 그의 삶과 인생관을 잘 담겨져 있는 책을 구입했다. 바로 <야간 비행>이다.

 

 생텍쥐페리의 두 번째 소설 <야간 비행>은 상업 항공이 탄생하던 무렵인 1920년대 남아메리카의 항공 기지(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조종사 파비앵과 우편 항공 책임자 리비에르. 두 사람의 인물을 통해, 개인의 희생과 인류 전체의 이익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담한 문체로 묘사한다.

 

 당시 상업 항공사들이 마주한 문제는 다른 운송 수단들의 속도와 경쟁하는 일이었다. 훌륭한 상관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리비에르는 그 부분에 대해 ‘우리에게 그것은 사활이 걸린 문제다. 우리는 낮 동안에 철도와 선박에 비해 앞섰던 것을 매일 밤 까먹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책 방안으로 야간 비행을 제안했다. 처음에는 강력한 비난에 부딪쳤지만, 결국 허가받게 된다(실제로 이 소설이 집필되던 시점에도 야간 비행은 모험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소설의 끝자락에는 비극적인 죽음(파비앵)과 단호한 결의(리비에르)가 마주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작가는 읽는 독자에게 거듭하여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생명을 값으로 따질 수 없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인간의 생명을 넘어서는 가치 있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데 그것은 무엇일까’라고. 당시 새로운 길(항로)을 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했다. 난관에 직면한 소설 속 두 주인공은 두렵지만, 용감했다. 죽음을 불사한 그들의 고투. 덕분에 야간 비행은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다. 위대한 업적과 성과도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의 투쟁에 의해 만들어진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야간 비행>만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작가의 삶 또한 함께 읽었다. 생택쥐페리의 소설은 모두 그의 ‘경험’을 통해 빚어진다. 조종사의 입장에서 실제로 보고 느꼈던 하늘 그리고 그 하늘을 사랑한 사람들의 모습이 작품을 통해 되살아났다. 소설 속 파비앵이 밤하늘을 보며 독백하는 부분(‘인간은 일단 선택하고 나면 삶이 빚어내는 우연에 만족하며 그곳을 사랑하는 법이니까.’) 과, 냉철하지만 고독한 리비에르의 독백(‘인간의 행복은 의무의 수행에서 나오고, 그 의무의 수행은 투철한 작업의식에서 나온다.’)은 그런 의미에서 다가오는 여운이 깊다.

 

 <야간 비행>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무대에서 각오를 다지며 임하는 태도를. 작가를 통해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하루하루에 참의미를 찾아내는,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바라보는 그의 관점(시선)을,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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