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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 읽는 시간

<보통의 존재 / 이석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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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해주고 싶었다. 조용히 어깨를 토닥거리며.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서투르고 아팠던 당신의 삶이 조금은 나와 닮아서 마음이 저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에세이 <보통의 존재>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유명한 소설가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의 일생을 알고자 하는 방법은 실로 다양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정확한 이해는 그의 주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드려다 보는 것이다.”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그리고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라는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작가의 삶을 알아갈 수 있었다.

 

읽고 밑줄을 긋고 페이지를 접어가며 부지런히 읽었다. ‘보통의 존재’인 그의 진솔한 글 덕분에 나도 미뤄두기만 했던 일기장을 다시 펼쳤다. 더 자주 쓰고 지금의 순간을 담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른’에 대해 짧은 한 문장으로 썼다.

자신에게 선물을 하게 되는 순간부터.

그 외에 밑줄 그었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어느 보통의 존재

누구나 자신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실제로 오르기 어려운 산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 깨달음을 스물다섯에 얻는다면 그건 바보 같은 일일 것이고, 서른이라 한들 속단이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마흔 언저리쯤 되면 반드시 포기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다. 그때가 되면 마지막 몸부림도 쳐보고 온몸으로 거부도 해보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확인이다.

자신을 안 다는 것. 그 잔인한 일 말이다.

어릴 적 나는 꾸미고 감추는 데 헌신적이었다. 외출을 할 때면 발걸음이 아무리 불편해도 신발 안쪽에 겹겹이 밑창을 쌓아올려 키높이 운동화를 만들었고, 만나는 사람에 따라 거주지는 시시때때로 바뀌었으며,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모르는 것을 아는 척, 가지지 않은 것을 가진 척하느라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그렇게 나를 부정하고, 가리고, 아닌 척하기 위해 들였던 많은 공들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건 철이 들어서가 아니었다. 결국 있는 대로 드러내는 것이 가장 훌륭한 감추기이자 꾸밈이라는 진리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비로소 그 모든 콤플렉스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중략)

 

누군가에게 ‘당신은 소중한 존재’라고 말해주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사람의 인생이 공평한 지위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고는 힘들뿐더러 귀하고 대접받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날 때부터 하찮거나 혹은 별 볼일 없는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책들이 희망을 노래하고 거의 강요에 가까운 긍정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사람이란 저마다 타고난 인격과 재능에 격차가 있고, 그것을 가지고 각자 귀천이 분명한 직업을 선택하게 되며, 그에 따라 개개인의 사람이 품을 수 있는 꿈의 한계 또한 정해져 있다. 세상의 감춰진 진실이 이러할진대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목도하길 원하지 않는다.

 

나는 희망을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무섭다. 희망 이후의 세계가 두렵기 때문이다. 절망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혹여 운 좋게 거기서 벗어났다 한들 함부로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조심스러운 사람이 될 것 같은데, 세상엔 그에 아랑곳하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가보다.

 

미련이 많은 사람은 인생이 고달프다고 한다. 사람은 때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어서 ‘나에게 허락된 것이 이만큼이구나’인정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야 제명에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 산다는 건 그저 약간의 안도감을 가지고 시내 대형서점에 들러 책 한 권을 고르는 일에서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가족 중에 암에 걸린 사람이 없는 것, 빚쟁이들의 빚 독촉 받을 일이 없는 것, 먹고 싶은 라면을 지금 내 손으로 끊여먹을 수 있다는 하찮은 것들뿐이라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복의 크기가 결코 작은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만약 체념에서 비롯된 행복이라면, 더 많은 것을 갖고 싶고, 하고 싶은데 그 모든 욕망들을 어쩔 수 없이 꾹꾹 누르고,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영화에 일찌감치 백기를 든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그건 자신에 대한 기만이 아닐까.

 

나의 사랑했던 게으른 날들

그렇게 열심히 살지도 않았고

많은 사람을 만난 것도 아니었지만

바라는 게 많지 않았으므로

마음은 평화로울 수 있었던,

가진 건 없어도 별로 쫓기지 않고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도 초조함도 없었던

 

돌아가라면 돌아갈 용기는 없어도

그리운 것은 분명한

그때.

 

나의 사랑했던 게으른 날들.

 

사람

한 명의 사람을 만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읽거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일과도 같다.

 

누구든

얼굴에는 살아온 세월이 담기고

모습과 말투, 행동거지로 지금을 알 수 있으니

 

누군가를 마주한다는 것은 어쩌면

한 사람의 일생을 대하는 것과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결속

 

진정으로 굳은 결속은

대화가 끊이지 않는 사이가 아니라

침묵이 불편하지 않은 사이를 말한다.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얘기가 안 끊어진대요.”

그럼, 내가 평생 읽을 책 같은 사람을 만나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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