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혼자 책 읽는 시간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728x90
BIG

2015년 시월의 어느 날이었다. 슬픈 소설에 자꾸만 손이 갔다. 읽어야 할 것은 산더미인데 나도 모르게 시집으로 손이 갔다. 속삭이듯 찾아오는 가을을 대면하는 내 몸의 익숙한 반응이었다.

 

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이루고 싶었다. 소설과 시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서점 진열대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책이 있을까?’라는 물음표가 커질 때쯤, 유쾌한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쓴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을 발견했다. 행운이었다.

 

이 작품은 실제 인물이자 남미의 위대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소박한 칠레 민주에게 바치는 헌사이면서도 작품 속에 넘쳐나는 잔잔하면서도 진한 감동, 재치 넘치는 묘사와 대화, 해학적인 성 묘사, 순수함이 빚어낸 일화들이 읽는 독자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더불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일 포스티노>의 토대가 된 소설이기도 하다. 나 또한 몇 번이고 거듭하여 봐왔던 영화라 책을 만지작거리며 익숙했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선생님, 저 사랑에 빠졌습니다.”

시인은 전보를 부채 삼아 턱 앞에서 부쳐댔다.

“별 심각한 일은 아니군. 다 치료법이 있으니까.”

“치료법이라고요? 치료법이 있다 해도 차라리 아프고 말겠어요. 사랑에 푹 빠져버렸단 말이에요.”

 

덕분에 소설을 펼치기 전부터 흐름을 대략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책 속에서 흘러나오는 두 사람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영화를 보고 느꼈던 울림 이상으로 깊게 내 가슴을 건드렸다.

 

내가 인지하고 있던 마리오는 수줍고, 철없으며, 사랑만이 전부였던 소년이었다. 그런데 소설을 통해 다시 만나보니 그 속에서 스승(네루다)을 향한 순수하고 맑은 제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문학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마리오가 위대한 시인 네루다를 만나 자신의 가능성을 알게 되고, 가르침대로 착실하게 메타포(은유)를 연구하여 첫눈에 반한 베아트리스에게 사랑을 고백해 결혼까지 성사된다.

 

어디까지나 있는 그대로 스승을 향해 돌진하는 마리오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나는 저 소년처럼 순수하게 스승을 구도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소설의 끝부분은 다소 비극적인 결말로 마무리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울적해지진 않는다. 처음부터 중후반까지 문장 하나하나가 한편의 시처럼 아름답고 밝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인의 역할을 꼭 시인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할 수 있구나! 아니, 해야겠구나!’라고 느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비롯해 여러 인물들의 공통점은 다들 시적인 메타포를 이용해 유머러스하고, 귀엽고, 산뜻한 문장들을 쏟아낸다. 모두가 시인처럼 말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나는 이 세계에서 자기 자신만의 시적인 언어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어디선가 살해되고 박해당할지라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그 잔혹한 괴물과 맞서 싸우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무엇인가에 참의미를 찾아내는 출발점은 깊은 사색이다. 그리고 관심이다. 더불어 ‘공감’ 능력이다. 분주하게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낯선 단어일 것이다.

 

나부터 지금 내 주변의 모든 것들에 더욱 깊이 사색하고, 관심을 기울이며,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을 결의하며 책장을 덮었다.

 

728x90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