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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사랑하는 일을 지속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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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적인 사람일까

아니면 현실적인 사람일까

 

매거진 주제를 확인하며 떠오른 첫 물음표였다.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20년 지기 친구에게 물었다. 심심한 안부를 전하며 질문했더니 곧바로 돌아온 대답은 "넌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이상적인 사람이라 생각해. 일단 아직 철이 없잖아."였다. 이건 칭찬도 아니고 욕도 아니었다. 잠깐 버벅거렸더니 그렇게 답한 이유가 있다며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면 충분히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덕분에 추억에 빠졌다. 

 

현실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일이나 상태. 실제로 사실로서 부여되어 있는 것. 또는 이상에 상대하여 그의 소재나 장애가 되는 일상적, 물질적인 것. 실제로 존재하며 활동하는 것. 곧, 상상이나 허구가 아닌 실제로 성립되어 있는 상태를 이른다.

반의어 > 이상
수량, 정도, 위치 등이 일정한 기준보다 더 많거나 낫거나 앞섬.

 

제대한 지 반년도 안된 스물네 살의 가을. 나는 친구와 소주잔이 오가던 자리에서 삼겹살을 굽다 말고 대뜸 선언했다. "글 쓰는 사람이 될 거야." 늘 평정심을 유지하던 친구는 가볍게 웃어넘겼다. 그저 취기 어린 말이라고 생각했단다. 하긴, 뜬금없긴 했다. 하지만 나는 뜬금이 있었다. 오래 고민했으니까. 그날의 선언 이후 부단히 노력하며 전공(공대생)과 멀어졌다. 글쓰기에 열중하며 상상했다. 언젠가 내 이름 석자가 신문지면에 등장하고 땀 냄새 풀풀 풍기는 기사를 통해 거창한 변화는 아니어도 좋았다. 아주 조금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영향을 끼치고 싶었다. 

 


첫 취재현장을 기억한다

 

수년째 고층 빌딩에서 새벽 2시부터 다음날 정오까지 청소일을 하는 여사님의 쉬는 모습을 지켜보며 '좋은' 기자를 꿈꿨다. 모두가 외면하는 장면(사건)이나 소외된 곳을 관찰하며 나라도 계속 떠들고 싶었다. 그렇게 며칠밤을 지새워 기사를 작성했다. 허나 돌아오는 반응은 냉혹했다. 데스크부터 전반적인 평은 '너무 이상적이다'였다. 당시에는 서운하고 힘들었다. 자괴감에 빠져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취재원에게 죄송했다. 기자랍시고 며칠을 붙어 다녔는데 빛을 보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깨달았다. 되돌아보면 선배들의 평가가 맞는 말이었다. 메시지를 더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면 좋았을 텐데, 너무 감정해 취해 있진 않았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취재 영역이 아니더라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자주 맛봤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잘 해낼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늘 방황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일도 때론 손끝 하나 건들고 싶지 않을 정도로 괴로운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넌 이 정도 레벨이야. 여기까지 왔어. 앞으로 조금 더 걸어가면 돼.'라고 조언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택해야만 하는 과정이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친구의 말처럼 나는 아직 수줍고 철없는 사람이다. 계속 이상을 택하고 있고 덕분에 잔잔한 실패(경험)를 마주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 (1877-1962).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데미안)

 

 

현재 진행하거나 앞으로 펼쳐질 프로젝트가 산재되어 있다. 여러 분야에 두루 관심을 갖는 나는 '다능인'이 되고 싶다. <사이드 프로젝트> 사이트의 운영자이자 융작가님은 다능인에 대해 설명했다.

 

에밀리 와프닉의 <모든 것이 되는 법>에서 다능인을 "많은 관심사와 창의적인 활동 분야를 폭넓게 아우르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다능인을 저의 언어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다능인 = 한 가지 분야에 스스로를 규정짓지 않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

본캐와 부캐가 공존하는 시대에 좋아하는 게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은 건 괴로워할 일이 아니라 축하할 일에요! 한 길만 선택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도 선택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입보단 귀가 열린 어른이 되고 싶다. 매년마다 개인 저서 한 권씩을 출간하는 목표도 있는데 예상처럼 '순조롭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출판 제안을 기다릴 형편은 아니라서 분주히 리스트를 정리하고 출간 계획서를 전달하는데 모두 친절한 태도로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처음엔 조금 슬펐는데 지금은 괜찮다. 2022년 국내 출판사 주소록을 들여다봤더니 총 56,479건이 있다. 그중에 난 10%로도 접촉하지 않았다. 와! 다행이다. 아직 단념할 일이 아니다. 

 

기쁜 소식도 많다. 우선 수익 여부를 떠나 썼던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의미가 되면서 다양한 기회가 찾아왔다. UX 라이팅 분야 작가로 대기업과 협업해 빅데이터를 통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뉴스레터도 꾸준하게 구독자가 늘고 있고 내년에는 멤버십 형태로 서비스를 확대해 유료 구독 전환을 기획 중이다. 한 달에 한번 열리는 책방도 분위기가 좋다. 영화 평론가의 제안으로 전문가 수업을 주말마다 듣고 있다. 물론 야간대학을 다니는 것은 안 비밀이다. 

 

앞으로도 좌절하지 않고 사랑하는 일을 계속하며 방법을 찾을 것이다. 

뚜벅뚜벅 걸어갈 것. 

그리고 계속 상상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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