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시선

새벽을 여는 사람 (청년 빈곤)

728x90
BIG

지혜씨를 따라 나선 새벽, 밤하늘을 찍다. (2022.01.02)



지혜 (가명) 올해 스물다섯이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했고 그녀 표현대로라면 "죽을 각오로" 공부해 9 공무원에 합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을 시작했고 선배들의 따뜻한 격려에 감사한 마음으로 일에 집중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르바이트는 멈출 수가 없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지병을 앓고 계신 어머니와 3 되는 남동생을 돌봐야 하는 그녀에게 쓰리 잡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고단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어쩔  없어요. (공무원)  월급을 받던 , 기뻤지만 반대로 슬펐어요. 이것만으로는 생활하기 벅차니까요."

 

매일 새벽 4시면 신문배달을 시작했고 두 시간이 걸렸다. 나는 하루라도 함께 다니면 조금 일찍 퇴근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따라나섰다. 생각보다 배달 일은 쉽지 않았다. 고층에 서 있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변수부터 같은 새벽시간대에 택배업 노동자와 자주 부딪쳤다. 그 밖에도 다양한 변수가 있었다. 벌써부터 지쳐있는 나를 보며 지혜 씨는 "다이어트도 되고 좋아요."라며 "종이의 시대가 저물어간다고 자주 말하잖아요. 그럼에도 이른 새벽부터 신문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새삼 느껴요."라고 말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또 다른 지혜를 계속 발견한다.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요한 수단인 ‘일’을 하고 있는데도 계속 가난하다는 청년들을 마주한다. 국가인원위원회는 2019년 만 19~34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빈곤 청년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의 66.9%는 ‘돈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것이 꺼려진 적이 있다.’고 답했다. 가족 생일 등 기념일을 챙기는 것이 부담스럽다(49.6%), 생활필수품을 줄일 정도로 어려운 적이 있다(31.2%) 등의 답변도 있었다. 정부에 바라는 지원은 주거 안정(32.1%)으로 제일 많았고, 일자리 창출(17.5%), 생활비 지원(17.1%)이 뒤를 이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 조사한 내용인데, 지금은 어떨까. 본질적인 해결방안이나 문제는 더 커지거나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청년 빈곤이라는 키워드를 살펴보면 덩달아 따라오는 여러 키워드가 있다. 그중에서 작년부터 매체와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조용한 퇴사’라는 개념이 있다. MZ세대는 일하는 중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고, 언젠가 퇴사할 상황을 그리며 적당히 일하는 요지다. 물론, 그 우려와 사실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풍경을 세대 모두의 콘셉트로 치한 되는 것은 우려스럽다.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일하고 도저히 생활을 이어갈 수 없어 주변을 서성거리고 부업을 찾는 엔잡러(여러 개의 직업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핀잔 대신 따뜻한 위로를 건네면 어떨까? 내 주변 청년들은 위로와 공감이 담긴 ‘~라떼는 말이야.’를 흥미롭게 기다린다. 오늘도 낯설지만 익숙한 청년들을 나는 매일 만난다.



#인천일보 #칼럼 #청년 #청년빈곤 #사회 #엔잡러 #이야기


728x90
LIST